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문단 편집) === 성과 === 술라 개혁의 근본적인 목적은 본인과 그 추종자들, 즉 옵티마테스로 알려진 원로원 내 인사들이 정부 체제를 주도하고 이를 안정된 정부로 이끄는 것이었다. 따라서 기원전 78년 술라는 자신이 은퇴 후에도 이러한 체제가 수립되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가지며 죽었다. 그렇지만 이런 술라의 개혁은 문제점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벌인 희생에 비해 개혁의 성과는 상당히 별볼일 없었고 이로 인해 공화정 체제는 그의 사후 예상보다 빨리 붕괴하고 만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부는 성과가 뚜렷한 것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준, 민회에서 재판을 다룬 관행을 폐지하고 모든 재판을 상설 법정체제에 위탁한 법정 개혁 또는 사법부 신설 개혁이었다. 술라는 집권 이후, 원로원 의원들을 배심원에 임명했고 법정 판결 역시 원로원의 입김을 강화시켜 여러 문제를 낳았다. 허나 그는 로마 공화정 시대에서 상당히 진취적이었던 호민관 리비우스 드루수스가 하려고 한 법정 개혁과 상설 법정의 전문화, 법정 수 증대를 모두 실행에 옮겨, 이를 개혁에 반영했다. 따라서 술라 개혁 이후부터 로마의 치안 판사 제도와 상설 법정은 속주 총독의 부당 취득재산 반환 청구, 선거 위반 및 뇌물수수, 반역죄, 위조 및 사기, 공금횡령, 살인, 폭행의 7가지 틀을 갖추게 됐고, 이는 이 업무를 전담하는 법무관 정원 숫자의 증가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다음으로 술라는 원로원 주도의 반동 개혁이라는 비판에도, 어쨌든 [[기사계급]]들에게 원로원 문호를 개방해줬다. 또 로마의 문제 타개를 위해 정무관직들과 속주 총독 정부 사이의 합리적 업무 조정도 신경쓰면서 이 부분에서의 중앙통제의 한계도 일정 부분 해소시켰다. 하지만 이는 그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유기적 연계를 중요시하고, 원로원 내 정치게임의 일상화를 방지해 신참자로 입성한 이들이 현 체제 속에서 자신의 국제를 지지하길 바란 조치였다. 더군다나 이 두 가지 개혁은 문제점 항목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모래성이 붕괴되듯 술라 사후 와장창 무너졌다. 왜냐하면 이후 등장한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같은 이들이 자신의 야심을 위해, 술라가 만들어 놓은 공화정 체제의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의 연계를 도리어 자신이 유리한 정치게임에 이용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그 정도 개혁만으로는 원로원 체제 하에서 일상적인 정치게임을 막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차피 강제력은 술라 자신이 죽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 거기다 애시당초 이런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의 연계, 아니 술라의 개혁 자체가 애시당초 술라 자신의 야망을 위한 것이기도 했으니 그의 사후 다른 이들이 그를 모방한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